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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교회사

70인역, 70인경에 대하여

by 델로노아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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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인역, 70인경에 대하여 ]

 

<배경>

바사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한다. 알렉산더 대왕(BC356-323)은 만 20세에 왕이 되어 아버지 이상의 군사적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왕이 된 후 곧 정복전쟁을 시작하여 주전 330년 26살 나이에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그리 주전 323년 만 33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마케도니아로부터 인도 북서부까지 이르는 방대한 땅을 차지하였다.

알렉산더는 정복 전쟁에서 귀환하던 중 바벨론 지역에서 열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으나 자식이 없었으므로 그의 부하장군들에 의해 그의 영토는 4개로 나뉘게 된다. 이들이 서로 겨루다가 다시 안티고노스 왕조, 셀류키드 왕조, 톨레미 왕조가 확립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왕조는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삼은 셀류키드왕조와 이집트 지역을 중심으로 한 톨레미 왕조이다. 

 

알렉산더의 제국이 나뉜 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주전 323년부터 주전 198년까지 톨레미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톨레미 왕조는 유대인들에게 대체로 관대했다. 이스라엘 본토에서는 대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들이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 이루어졌는데,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는 큰 도서관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고대서적인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도서관을 맡고 있던 데메트리우스라는 사람이 히브리어 성경을 국가 예산으로 번역할 것을 톨레미에게 요청했고, 그의 승낙을 얻어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가경으로 그 내용의 진정성을 보장할 수 없으나, '모세오경'에 대한 사본들의 본문이 상당히 일치된 모습을 보여 준다는 면에서  70인경의 통일적인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진 이 번역본을 흔히 70인역이라고 부른다. 70인역은 번역자의 수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나 원래 번역에 참여한 랍비의 수는 72명이었으나, 유대인들의 단 단위의 숫자를 생략하는 습관에 따라 70인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라틴어로 70이라는 숫자가 '셉투아진트(Septuagint)'라서 이 책을 '셉투아진트'라고 부르기도 하고, 70의 라틴어 표기를 사용하여 'LXX'로 표기하기도 한다.

 

<의의>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제국이 통일된 후, 헬라어로 언어가 통일되고, 70인경이 번역된 것의 중요성은 언어가 통일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헬라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70인경으로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성경의 번역이나 언어의 장벽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구약성경 구절과 구약성경 자체의 구정이 조금씩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얼까?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구약성경은 많은 경운에 70인경의 인용이고, 우리가 읽고 있는 현대어 구약 성경의 모체는 맛소라 사본이기 때문이다. 맛소라 사본은 바벨론 사본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나지만, 역본들 사이의 차이는 교리적으로 무시해도 좋은 정도로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김병국 교수의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와 수업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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