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엔 없었으나 신약에 갑자기 등장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이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엣센파, 열혈당, 열심당은 뭐지?
오늘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유대교의 네 분파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유대교에 네 분파가 있다는 설명은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유대고대사> 글에 나타나있다. 요세푸스의 두 저서는 신구약 중간사는 물론 그 당시 로마와 유대 상황에 대한 글등 신약 성경의 많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유대교에 네 개의 분파가 있었고 그것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센파, 열혈당이라고 썼다. 그들 중 열혈당은 주후 6년에야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다.
1) 엣센파
1947년 사해 북서쪽의 쿰란 동굴들 속에서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대개 그 문서들을 남긴 공동체가 엣센파였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경에는 엣센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들은 요나단 왕의 대제사장직을 겸하는 것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러자 왕은 이들 중 몇 명을 죽여 버렸다. 그들은 이대로 정통성이 없는 대제사장 밑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반항을 하면 계속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따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해 호수 북서쪽에 있는 쿰란으로 가서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만들고 살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도원 공동체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주후 68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2) 사두개파
사두개파라는 이름은 대제사장 사독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귀족이었다. 왕의 정책에 찬동하는 사람들이었고, 요나단의 대제사장 등극에도 당연히 찬성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제사를 둘러싼 모든 권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마어마한 특권이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 23:14-17에 말씀에 따라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는데, 무교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5절 말씀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에 따라 하나님께 헌물을 비치기 위해 정성껏 준비해야 했다. 사두개인들을 그냥 가만히 성전에 있으면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일 년에 세 번씩 찾아와서 헌물을 잔뜩 바치고 간 것이다. 그리고 뒤에는 그들을 보호하는 왕권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두개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종교적, 정치적 힘까지 갖춘 종교 귀족들이었다.
사두개파는 성전제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한 부활의 소망, 영혼의 소생과 이 땅에서의 삶을 벗어난 이후의 보상과 징벌에 대한 문제를 거부한다. 그들은 오직 토라(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토라에서는 부활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가복음 12:18-27에서 출애굽기 3:6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모세오경에서도 부활의 언급을 이끌어 내신다.
이러한 사두개파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분파였기 때문에 주후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되자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3) 바리새파
'바리새'라는 말의 어원은 '분리하다'이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친권력적 성격을 가졌던 사두개파와 반권력적 성경을 가졌던 엣센파의 중간 입장을 취했다. 요나단의 대제사장직 겸임에 찬성도 극렬한 반대도 하지 않았다. 엣센파가 쿰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고, 사두개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는 달리, 바리새파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조용하게 활동했다. 낮에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저녁이면 토라를 연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살았다. 이들의 뿌리는 하시딤이다.
바리새파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유대교가 재형성되는 과장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계층이다. 바리새파는 토라와 함께 동등한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전통적인 해석과 그 적용을 고려했다. 신약에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법과 전통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는 과오를 저지른다.(막 7:3-5; 갈 1:14). 이런 유대교의 입장이 오늘날 유대교 전체의 입장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네 개의 분파들 중 주후 70년 이후에 살아남은 분파가 바리새파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두개파는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역사에서 사라졌고, 엣센파도 주후 68년에 로마군에 의해 쿰란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열심당은 로마에 대한 항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완전히 맥이 끊겨 버렸다. 결국 율법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즉, 구전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지키던 바리새파만이 전쟁 후에 살아남았고, 지금의 유대교도 구전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이 글은 수업 강의안과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를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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