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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교회사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성상 논쟁 정리

by 델로노아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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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787년 소아시아의 도시인 니케아(현재의 튀르키예의 이즈니크)에서 두 번째로 열린 기독교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성상 논쟁'을 종식시키고자 소집된 공의회였다.

 

'성상'이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과 천사 등 거룩한 이들의 모습을 그림이나 판화, 모자이크, 조각 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성상은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금기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한 요소로 받아들였다. 초대 교인들은 글자를 몰랐기에 그림, 모양, 조각상 등이 교육용으로 필요했고, 이것들에 종교심이 투영되면서 성상 숭배로 발전되었다.

 

동방의 황제 레오 3세는 726년 성상 파괴를 선언했다. 당시 동방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상을 우상숭배의 죄로 생각하고 있었다서방에서는 그레고리 3세 제90대 교황이 731년 로마에서 공의회를 소집해 성상 숭배를 거절하는 이를 파문했다. 이는 동방의 레오 3세 황제에게 매우 불쾌한 행위였으며, 동방과 서방은 분열되고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

서방의 교황 그레고리 3세에 이어 741년 자카리는 제91대 교황이 되어 콘스탄티노플에 충성을 맹약하고 동방의 레오 3세 황제의 정책에 동조했다.

동방의 레오 3세의 아들 콘스탄틴 5세에 이르러 성상파괴 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레오 3세는 황제의 자문 공의회를 통해 성상을 금지했는데 콘스탄틴 5세는 종교회의를 통해 성상을 파괴했다.

 

콘스탄틴 5세는 754년 히에리아 궁전에서 성상 파괴를 위한 공의회를 소집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상 파괴를 정통 신앙으로 인정하며 모든 성상에 대한 정죄를 선언했다. 콘스탄틴 5세가 죽고 아들 레오 4세가 황제가 되어 고아 출신 성상 숭배자 이레네와 결혼했다. 레오 4세는 황제가 된 5년 뒤 10살 된 아들 콘스탄틴 6세를 남기고 30세의 나이에 열병으로 사망했고 권력은 황후인 28세 이레네에게 이양되었다. 황후는 성상문제에 대해 자신과 뜻을 같이 하고 감독들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총대주교로 평신도 관료 타라시우스를 선택하고 748년 성탄절에 공포하였다.

1년 뒤 785년 제95대 교황 하드리안 1세로부터 공의회를 개최하자는 편지가 도착하였다. 하드리안 1세는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이레네에게 이전의 교황들이 성상파괴자들을 정죄하였지만 자신은 성경과 교부들의 저술을 근간으로 성상을 숭배한다”라고 했으며 754년 히에리아 공의회를 정죄했다.

 

78681일 이레네와 콘스탄틴 6세가 참석한 가운데 콘스탄티노플에서 공의회가 열렸고, 그 목적은 당연히 성상 숭배를 위한 것이었다. 이에 제국 군인들이 회의장 밖에서 성상 숭배를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켰고 공의회는 무기한으로 연기되었다. 이레네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시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개최할 것을 명령했다.

 

1년 뒤인 787924일 니케아에 있는 하기야 소피아 교회당에서 약 300명이 참석한 제2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고 성상 숭배를 공식적인 신앙으로 승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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