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개혁교회
: 계몽주의 영향으로 18세기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침체기에 들어감
: 181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
: 오렌지의 윌리엄프레드릭이 초대국왕이 되면서 교회를 ‘국가개혁교회’ 또는 ‘왕실 교회’로 불렀고 이를 ‘국가종교’로 선포
: 성공회 신자인 그는 1816년 ‘교회치리정관’ 발표. 국왕이 총회장을 매년 임명하고, 총회에서는 총대전원과 총회임원 모두 임명하였다(수장령).
: 목사 임직 서약문 개정 - 하나 되는 세 고백서가 하나의 고백서로 바뀌면서 도르트 신조는 사라졌다. ‘교회치리정관’ 이후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사사말기와 같은 시대였다.
2) 헨드릭 드 콕의 ‘분리’
: 국가 개혁교회의 신학적 변질에 대하여 비판한 “울름교회”의 헨드릭 드 콕 목사.
그는 자유주의자였으나 울름교회 성도들을 통해 마음에 개혁의 불길이 일었고, 이웃교회의 목사로부터 [기독교강요]를 빌려서 탐독하였고, 도르트 신조를 얻어 공부하였다.
콕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성경에 충실한 개혁자가 되었다.
: 콕의 개혁적인 설교는 인기가 높았다. 콕의 명성이 높아지자 국교회는 두 가지 사건을 문제 삼음 (타 교회 성도에게 유아세례를 준 문제로 정직, 복음적 찬송가의 사용을 반대한 것을 빌미로 면직.)
: “분리 또는 복귀의 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고백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거짓 교회로부터 ‘분리’한다고 밝힘. ‘도르트신조와 하나님 말씀으로 복귀하는 것’
콕 목사의 선언에 따라 많은 교회가 따랐고 이들의 교회를 ‘십자가를 맨 개혁교회’라 불렀고, ‘분리개혁교회’로 바뀌었다.
: 캄펜 신학교 세움.
: 최종적으로 교단 명칭을 ‘기독개혁교회’라고 정했다.
3) 아브라함 카이퍼의 ‘애통’
: 아브라함카이퍼는 박사학위를 받고 베이스트라는 작은 마을 교회의 목사로 목회시작.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은 삼십 대 여인으로부터 전통적인 개혁신학을 접하고 칼빈주의를 전파하는데 전 생애를 바칠 것을 결심함.
: 이후 암스테르담 교회로 옮겼고, 이 교회를 중심으로 개혁 운동을 펼쳤다. 주간지와 일간지의 편집장이 되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고, 이 영향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 국가의 지원 없이 개혁신학을 배울수 있는 ‘자유대학’을 설립.->교권주의자들은 자유대학에서 졸업한 목사를 청빙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개혁주의 전통을 따르는 자들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어느 지역 교회가 국교회의 허락 없이 자유대학 졸업생을 목사로 청빙 하였고, 이것은 교회 분열의 기폭제가 되었다.
: 개혁주의 신조를 고백하지 않는 자녀들을 교회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문제로 카이퍼를 중심한 세력들이 거절하였고 노회가 카이퍼를 면직함.
: 카이퍼와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고 ‘애통의 교회’라 불렀다.
4) ‘화란 개혁교회’(분리+애통)
: 애통측이 국교회에서 분리되자 자연스럽게 콕의 분리 측과 통합논의가 진행됨. 두 측은 모두 개혁파 신조를 지지했고, 도르트 교회 정치에 동의하며, 국가로부터의 교회 독립을 추구했기 때문에 연합이 가능했다.
: 헤르만 바빙크는 양 교단의 합동에 공헌. ‘화란 개혁교회’를 세움.
: 분리측의 일부는 카이퍼의 일부 사상에 문제를 제기하며 합동을 거부하고 ‘기독개혁교회’를 그대로 고수하였다. 이들이 세운 학교가 ‘아펜도르 신학교’이다.
5) 31조파’ 또는 ‘화란 자유개혁교회’
:스힐더의 아브라함 카이퍼 사상(가정적 중생, 일반은총, 영원칭의와 같은 교리들)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되었다.
: 카이퍼주의자들이 총회에서 이것들을 최종확정하였고 목사들에게 서명을 강요한 것에서 분열이 시작 ->총회는 스힐더와 그 지지자들을 면직처리-> 이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했으나 개혁교회는 총회의 결정이 성경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구속력을 가진다고 규정하였다. 반대파들은 총회 결정이 성경에 위배되기에 구속력이 없다고 보았다.
: 스힐더와 지지자들은 부당한 총회의 교권에서 쫓겨나면서 교회를 설립했는데 그 교회를 ‘해방’이라고 불렀다. ‘31조파’ 또는 ‘화란자유개혁교회’라고도 했다.
: 기존의 신학교와 이름이 같은 캄펜신학교를 세웠다.
'신학과 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황청의 분열 과정 (0) | 2023.10.25 |
---|---|
어거스트 헤르만 프랑케의 생애와 사역 (1) | 2023.10.24 |
제2차 니케아 공의회, 성상 논쟁 정리 (0) | 2023.10.06 |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 2 (0) | 2023.10.06 |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 Ⅰ (4) | 2023.09.19 |